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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립스틱을 그냥 색 하나 더하는 물건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화장대 앞에서 손에 쥔 빨간 립스틱을 보다가 문득 이게 대체 언제부터, 왜 생겼을까 싶어졌습니다. 찾아보니 이야기가 예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분 상징부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저항 표시, 그리고 대량생산이 만든 소비문화까지, 작은 화장품 하나에 시대의 가치관이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고대의 입술 화장, 예뻐지려고 바른 게 아니었다
제가 처음 이 부분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화장은 남녀 구분 없이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거든요. 지금은 립스틱이 주로 여성 화장품으로 분류되는데, 수천 년 전에는 전혀 다른 맥락이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자료를 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화장품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사용했고, 화장 용기 자체가 금이나 흑요석 같은 귀한 재료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여기서 흑요석이란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유리질 암석으로, 당시에는 가공하기 어려운 귀한 소재였습니다. 화장 용기가 그런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건 단순한 미용 도구가 아니라 소유자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물건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물질문화(material culture)의 개념입니다. 물질문화란 사람들이 사용한 물건을 통해 당시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을 읽어내는 역사 연구의 관점을 말합니다. 화장품이 그 시대의 신분 상징이었다면,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 자체가 곧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선언하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화장대에 굴러다니는 저렴한 립스틱 하나를 다시 봤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쓰고 버리는 소비재지만, 과거에는 전혀 다른 무게의 물건이었으니까요.
다만 모든 시대가 화장에 우호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눈에 띄는 색조화장이 오히려 부도덕함과 연결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이 입술과 볼에 꽃잎이나 열매의 색소를 몰래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어떤 사회에서는 권위의 상징이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감춰야 할 무언가가 됩니다. 이 변화가 제게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 고대 이집트에서 화장품은 남녀 모두가 사용한 생활문화였으며, 화장 용기 자체가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 안료(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를 입술과 볼에 바르는 관습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
- 19세기 미국에서는 같은 색조화장이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과 연결되어, 여성들이 화장을 은밀하게 해야 했다
붉은 립스틱이 거리로 나온 날, 참정권 운동 이야기
이 부분은 제가 이전에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1920년대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고 나서 립스틱으로 축하했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순서가 좀 다릅니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수십 년에 걸친 긴 싸움이었습니다. 수정헌법 제19조가 의회를 통과한 건 1919년이고, 비준은 1920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인 1910년대, 여성들이 거리를 행진하던 그 시기에 이미 붉은 립스틱이 사용됐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자료에 따르면, 화장품 기업가 엘리자베스 아덴이 뉴욕의 참정권 행진 참가자들에게 붉은 립스틱을 나눠준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U.S. National Park Service).
여기서 엘리자베스 아덴은 20세기 초 미국 화장품 산업을 개척한 기업가로, 그녀가 행진에 립스틱을 나눠줬다는 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화장이 당시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숨겨야 했던 행위가 공개적인 선언의 도구가 된 것이죠.
참정권 운동의 상징색은 보라색, 흰색, 금색이었습니다. 붉은 립스틱이 이 운동의 공식 상징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사실은 단순화될수록 오히려 중요한 맥락을 잃게 됩니다. 당시 여성들은 의복, 색상, 배지, 현수막 등 여러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립스틱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자기표현(self-expression)의 도구로서요. 자기표현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생각을 외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당시 여성들에게 공개적으로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저항이었습니다.
- 붉은 립스틱은 1920년대가 아니라 1910년대 참정권 행진에서 이미 등장했다
- 참정권 운동의 공식 상징색은 보라색, 흰색, 금색이었으며, 립스틱은 그 운동의 여러 시각적 표현 중 하나였다
- 엘리자베스 아덴이 행진 참가자들에게 립스틱을 나눠준 사건은 화장이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다
대량생산이 바꿔놓은 것, 립스틱이 소비문화가 되기까지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체감이 됐습니다. 지금 저한테 립스틱은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이 당연함 뒤에는 꽤 짧은 역사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산업화(industrialization)가 화장품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산업화란 제품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사회 전체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는 변화를 뜻합니다. 화장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국립미국사 박물관에 따르면 1920년대 도시 여성들을 중심으로 눈에 띄는 색조화장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할리우드 배우와 플래퍼(flapper) 문화가 그 흐름을 가속시켰습니다. 여기서 플래퍼란 1920년대 미국에서 기존의 여성적 규범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선택한 젊은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전까지는 눈에 띄는 화장을 숨기거나 자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를 지나면서 공개적으로 화장하는 것이 오히려 현대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규범이 뒤집힌 셈입니다. 저는 이게 단순히 유행의 변화가 아니라, 대량생산과 광고, 도시화가 맞물려 만들어낸 소비문화(consumer culture)의 결과라고 봅니다. 소비문화란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행위가 개인의 정체성과 생활양식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는 문화를 말합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맥락이 보이면 립스틱 색을 고를 때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색이 그냥 예뻐서 고른 건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주입된 이미지 때문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됩니다. 화장품 산업이 성장하면서 립스틱 색상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직업적 이미지, 개성, 시대의 유행을 표현하는 언어가 됐습니다. 그 구조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 1920년대 산업화와 대량생산으로 립스틱이 도시 여성들의 일상 소비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 할리우드 배우와 플래퍼 문화가 색조화장을 대중문화와 연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숨겨야 했던 화장이 현대 여성의 상징으로 전환된 건 사회적 규범의 변화이자 소비문화의 확산이었다
립스틱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여성은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고 표현해 왔는가. 고대의 신분 상징에서, 19세기의 감춰야 했던 행위로, 20세기의 저항 언어와 소비재로. 같은 빨간색이 시대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저는 이 역사를 알고 나서 화장대 앞에 서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립스틱 하나를 고르는 행위가 여전히 가볍고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시대의 이야기가 쌓여 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일상의 물건을 한 번쯤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참고: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Make-up / U.S. National Park Service — The Fight for Women's Suffrage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Kohl Jar of Sithathory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