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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중세 유럽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영국 왕이 프랑스 땅 한 귀퉁이를 통째로 다스리고 있었고, 귀족들의 영지는 지금의 국경 같은 게 아예 없는 듯 두 나라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1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전쟁이 왜 끝나지 않았을까. 단순히 오래 싸운 전쟁이 아니라는 걸, 자료를 파고들수록 더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왕위계승권 분쟁, 전쟁의 불씨는 어디서 왔을까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은 1337년에 시작해 1453년에 끝난, 실제로는 116년짜리 장기 분쟁입니다. 이름은 백 년이지만 정작 내용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전쟁을 접했을 때는 막연하게 "영국이랑 프랑스가 싸운 거잖아" 하고 넘겼는데,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핵심 불씨는 왕위계승권(Succession)이었습니다. 여기서 왕위계승권이란 왕이 사망하거나 후사가 없을 때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법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프랑스 카페 왕조의 직계 남성 혈통이 끊기자,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어머니 쪽 혈통을 근거로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프랑스 귀족들은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밀었고, 두 진영은 결국 전쟁으로 충돌했습니다(출처: UK Parliament).
여기에 봉건제(Feudalism)라는 구조가 불을 더 키웠습니다. 봉건제란 왕이 귀족에게 토지를 내어주고, 귀족은 그 대가로 충성과 군사 지원을 바치는 사회 제도입니다. 당시 영국 왕은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 지역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왕에게 봉신으로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한 나라의 군주가 동시에 다른 나라 군주의 신하가 되는 이 기묘한 구조가, 갈등을 봉합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중세 유럽 지도를 보고 느낀 혼란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국경이 명확하지 않고, 사람과 땅이 뒤엉켜 있는 그 지도가 오히려 당시 정치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빠질 수 없습니다. 플랑드르 지역은 당시 유럽 최대의 모직물 산업 거점이었는데, 이 산업 전체가 영국산 양모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양국 모두 이 무역로를 쥐고 싶어 했고, 그 욕심도 전쟁의 불씨 중 하나였습니다.
- 왕위계승권 분쟁: 카페 왕조 직계 단절 후 에드워드 3세와 필리프 6세의 충돌
- 봉건제의 구조적 모순: 영국 왕이 프랑스 왕의 봉신이라는 이중적 지위
- 플랑드르 무역: 양모 공급과 모직물 산업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 충돌
- 귀족들의 정치 경쟁: 국경을 넘나드는 영지와 동맹 관계의 복잡성
116년이 걸린 이유, 그리고 전쟁이 남긴 것
자료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쟁 연표를 펼쳐 보니 116년 중 실제 전투 기간보다 휴전(Truce) 기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휴전이란 양측이 일정 기간 전투를 멈추기로 합의하는 것인데, 당시에는 왕이 바뀔 때마다,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협상 테이블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왕위 문제와 영토 문제는 한 번도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았고, 그래서 매번 전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흑사병(Black Death)은 전쟁의 흐름 자체를 뒤흔들었습니다. 흑사병이란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 전염병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확산이 절정에 달하면서 양국 모두 병력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워졌고, 전쟁보다 내부 수습이 더 급한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전쟁사를 읽을 때 전염병의 역할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백년전쟁에서는 그것이 결정적인 변수 중 하나였습니다.
군사 기술도 전쟁의 양상을 바꿨습니다. 영국군이 크레시 전투(1346)와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장궁(Longbow)을 앞세워 대승을 거뒀습니다. 장궁이란 사거리가 길고 발사 속도가 빠른 활로, 훈련된 궁수 집단이 기사 중심의 중무장 기병대를 무력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가 상비군(Standing Army)을 정비하면서 판세가 달라졌습니다. 상비군이란 전쟁이 없는 평시에도 해산하지 않고 유지되는 정규 군대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화포(Artillery)까지 등장하면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성벽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전쟁 후반, 잔다르크의 등장은 프랑스 입장에서 단순한 사기 진작을 넘어선 사건이었습니다. 오를레앙 포위 전(1429)을 돌파하면서 전세가 뒤집혔고, 샤를 7세는 이를 발판 삼아 중앙집권(Centralization)을 강화했습니다. 중앙집권이란 분산되어 있던 국가 권력을 왕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과정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전쟁을 통해 국가의 모습 자체가 바뀐 것이니까요.
자료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백년전쟁은 한 번의 전쟁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이어받은 미해결 과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왕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고, 전염병이 왔다 가도,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한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변화를 이 전쟁 하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역사학에서는 경제 변화, 군사 기술 발전, 정치 구조의 재편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그 전환점 어딘가에 백년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유럽사나 왕위계승권 분쟁에 관심이 있다면, 당시 지도를 한 번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국경이 사라진 그 지도를 보는 순간, 왜 이 전쟁이 100년을 넘길 수밖에 없었는지 말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참고: UK Parliament – History of the Hundred Years' War / Encyclopaedia Britannica – Hundred Years'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