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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는 처음부터 남성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먼저 손목에 시계를 찬 건 귀부인들이었고, 남성들은 그것을 '여성스러운 장신구'로 봤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손목시계가 정장이나 군복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남성 아이템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직접 찾아보니 그 이미지가 바뀐 계기가 꽤 극적이었습니다.
귀부인의 손목에서 시작된 이야기
손목시계 역사를 처음 파고들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만난 기록은 1810년이었습니다.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 브레게(Breguet)의 문서에는 나폴리 여왕 카롤린 뮤라(Caroline Murat)가 손목에 착용하기 위해 특별 제작을 의뢰한 시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금실이 섞인 머리카락 소재의 손목 밴드에, 반복 기능과 온도계까지 결합된 극히 정교한 주문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목시계의 출발점은 왕실 귀부인의 장신구(accessory)였던 셈입니다. 여기서 장신구란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물건이 아니라, 신분과 취향을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으로 오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사냥, 승마, 자전거 같은 야외활동이 늘어나면서 손목에 작은 시계를 팔찌처럼 차는 방식이 퍼졌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도 1880년 무렵 영국과 유럽 여성들이 이런 방식으로 손목시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출처: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저는 이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활동성이 높아지면서 '시간을 빠르게 확인해야 하는 필요'가 생겼고, 그것이 장식성과 자연스럽게 결합된 겁니다.
반면 남성들은 오랫동안 회중시계(pocket watch)를 선호했습니다. 회중시계란 조끼나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꺼내 확인하는 시계로, 당시 남성 신사의 표준 아이템이었습니다. 손목에 차는 시계는 그들 눈에 '여성적인 물건'으로 보였고, 남성이 차면 어딘지 어색하다는 인식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당시 광고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시계 제조업체들이 나중에 남성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튼튼함'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광고를 따로 제작했을 정도였습니다.
- 1810년 나폴리 여왕 카롤린 뮤라의 손목시계 주문 — 브레게 기록상 최초의 손목시계 사례 중 하나
- 19세기 후반 유럽 여성들의 야외활동 증가 → 손목 착용 방식이 실용적 선택으로 자리 잡음
- 남성들에게는 회중시계가 표준, 손목시계는 '여성 장신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음
전쟁이 '여성 장신구'를 전술 장비로 바꾸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손목시계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꺾입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처음 읽었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쟁이 패션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전술적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당시 전선에서 가장 먼저 손목시계를 필요로 한 병과는 포병(artillery)이었습니다. 포병이란 대포를 운용하는 병과로, 사격 타이밍과 다른 부대의 이동을 분 단위, 초 단위로 맞춰야 하는 임무를 가졌습니다. 특히 크리핑 배리지(creeping barrage)라는 전술이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크리핑 배리지란 포병의 사격선을 조금씩 전방으로 이동시키면서 보병이 그 뒤를 따라 전진하도록 설계된 전술입니다. 이 전술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포병과 보병이 정확히 같은 시간표를 공유해야 했습니다.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낼 여유는 없었고, 손목을 한 번 돌려 확인하는 방식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트렌치 워치(trench watch)입니다. 트렌치 워치란 참호전(trench warfare) 환경에 맞게 개조된 손목시계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에는 회중시계에 가죽 끈이나 고리를 달아 손목에 고정하는 과도기적인 형태가 많았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소장 1917년 엘진(Elgin) 손목시계를 보면 시계 유리 위에 금속 격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당시에는 파편 보호 장치(shrapnel guard)라고 불렀는데, 포탄 파편이나 충격으로부터 시계 유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저는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요즘 스마트폰 케이스가 떠올랐습니다. 시대는 달라도 '좋은 도구를 혹독한 환경에서 보호하려는 필요'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에도 1915~1917년경 실전에서 사용된 손목시계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금속 메시 형태의 보호 장치와 가죽 스트랩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상태인데, 이 유물은 당시 손목시계가 단순한 패션품을 훨씬 넘어서 군사 환경에 맞게 실제로 변형됐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증명합니다(출처: Australian War Memorial). 제가 직접 이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전쟁이 새로운 물건을 발명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물건의 가치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손목시계는 이미 있었습니다. 다만 전쟁이라는 환경이 그 물건의 쓸모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전쟁 이후, 손목시계는 어떻게 일상이 됐을까
전쟁이 끝나고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손목시계도 함께 민간 사회에 들어왔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물건이 대중화되는 과정에는 항상 '이미 써본 사람들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손목시계가 딱 그랬습니다. 전선에서 직접 차고 다니며 실용성을 확인한 남성들이 일상에서도 그 습관을 유지하면서, '남성이 손목시계를 차는 것'이 서서히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시계 제조업체들도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미 산업화된 전쟁(industrialized warfare), 즉 공업 기술이 전쟁에 대규모로 적용된 결과로 시계 생산기술과 정밀도도 크게 향상돼 있었습니다. 업체들은 남성 소비자를 겨냥해 손목시계가 '여성 장신구'가 아니라 튼튼하고 실용적인 도구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소비문화(consumer culture)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입니다. 소비문화란 사람들이 물건을 단순한 필요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자신의 이미지나 생활방식과 맞는지를 따져 선택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손목시계는 '군인의 시계'라는 이미지를 발판으로 남성 패션에 안착했고, 이후 고급 사치재로 진화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시간을 확인할 때 스마트폰을 먼저 찾습니다. 솔직히 손목시계를 차고 있어도 굳이 손목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는 손목을 한 번 돌려 시간을 확인하는 그 짧은 동작이, 한때는 꽤 혁신적인 변화였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작전 중 회중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낼 수 없었던 군인에게는 그 손목의 각도 하나가 생사와 연결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 전쟁 귀환 병사들의 착용 경험 → 남성 손목시계 착용에 대한 인식 전환의 출발점
- 시계 제조업체의 마케팅 전략 → '튼튼하고 실용적인 남성 아이템'으로 이미지 재정립
- 소비문화와 결합하며 손목시계는 실용품에서 고급 패션 아이템, 사치재로 의미가 확장됨
손목 위의 작은 시계 하나가 귀부인의 장신구에서 전쟁터의 전술 장비가 되고, 다시 대중의 일상용품과 고급 패션 아이템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오다 보면, 결국 기술의 가치는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대와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지금 우리 손목에 있는 스마트워치도 어쩌면 100년 뒤에는 비슷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지 모릅니다. 손목시계 하나를 볼 때도 그 안에 어떤 시대의 필요가 담겼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 그게 역사를 공부하는 소소한 재미인 것 같습니다.
참고: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1917 Elgin Wristwatch / Australian War Memorial — WWI Trench Watch / Breguet — 최초의 손목시계 주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