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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 통조림
    스팸 통조림

    1937년 7월 5일, 미국 호멜 푸드(Hormel Foods)가 처음 출시한 SPAM 한 캔이 전쟁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한국 찬장까지 들어오는 데 채 100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치볶음밥에 스팸을 넣으면서 한 번도 그 캔의 내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사를 찾아보고 나서는 냉장고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됐습니다. 작은 캔 하나에 전쟁, 물류, 식품기술, 그리고 현지화(localization)의 역사가 압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는 부위가 상품이 된 이유 — 스팸 탄생의 경제적 배경

    SPAM은 처음부터 전쟁을 위해 설계된 식품이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 식품산업은 대량생산 체계가 빠르게 갖춰지던 시기였고, 호멜 푸드는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돼지고기 부위를 어떻게 상품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답이 가공육(processed meat)이었습니다. 가공육이란 원육을 그대로 파는 것이 아니라 염지, 가열, 혼합 등의 공정을 거쳐 보관성과 편의성을 높인 식품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재료 자체보다 가공 과정에서 상품 가치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호멜이 주목한 또 하나의 요소는 상온 보존성(shelf stability)이었습니다. 상온 보존성이란 냉장 시설 없이도 일정 기간 식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특성을 뜻합니다. 1930년대에는 지금처럼 냉장·냉동 유통망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밀봉된 캔 안에서 오래 버티는 식품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전쟁이 아니라 식품회사의 원가 절감과 유통 전략이 스팸을 만든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이요.

    출처: Hormel Foods — Our History에 따르면 1937년 7월 5일 출시된 SPAM의 성분은 돼지고기와 햄, 소금, 물, 감자전분, 설탕, 아질산나트륨이었으며, 개발 목표는 저렴하고 오래 보관되는 단백질 식품이었습니다. 전쟁용이 아니라 일상용 상품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계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조건과 맞아떨어지면서 운명이 바뀝니다.

    • 탄생 시점: 1937년 7월 5일, 미국 미네소타주 오스틴
    • 핵심 원료: 돼지고기, 햄, 소금, 감자전분, 아질산나트륨
    • 개발 목표: 저렴하고 장기 보관 가능한 단백질 식품
    • 핵심 기술: 상온 보존성을 확보한 통조림 밀봉 공정
    요약: 스팸은 전쟁이 아닌 식품회사의 원가 절감과 유통 문제 해결을 위해 탄생했으며, 상온 보존성이 이후 군용식량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조건이 됐습니다.

    1억 3천만 캔이 전쟁터로 — 군용 식량이 된 결정적 이유

    제2차 세계대전이 스팸의 운명을 바꾼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전쟁은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을 빠르게, 멀리, 안전하게 보내야 하는 물류(logistics)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류란 필요한 물자를 필요한 장소와 시점에 공급하는 체계 전반을 의미합니다. 신선육은 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무게가 불규칙하고, 냉장 없이는 금방 상하며, 전쟁터의 보급선에서 대량으로 다루기가 까다롭습니다.

    반면 스팸은 규격화된 캔 형태로 무게와 부피가 일정했고, 냉장 없이도 보관이 됐으며, 대량 운송에도 적합했습니다. 1941년 무기대여법(Lend-Lease Act) 시행 이후, 미국의 식량과 군수물자가 동맹국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호멜의 생산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호멜 푸드 공식 자료에 따르면 1941년 이후 회사는 주 최대 1,500만 캔의 육류 제품을 해외로 보냈으며, 1940~1945년 사이에만 1억 3,300만 캔 분량의 SPAM이 해외 군인과 민간인에게 공급됐습니다.

    출처: U.S. National Park Service — Post World War II Food는 전쟁 기간 1억 파운드 이상의 SPAM이 공급됐다는 호멜 측 추산을 소개하면서, 당시 미군이 통조림 육류 생산업체와 대규모 계약을 맺으며 군용 식량 체계의 핵심 품목으로 편입됐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단위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1억 3천만 캔이면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양입니다.

    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많이 공급됐다는 것이 곧 사랑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Smithsonian의 기록에는 매일 스팸을 먹어야 했던 병사들의 불만도 상당했다고 나옵니다. 제 경험상도 좋아서 먹는 것과 선택지가 없어서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스팸의 전쟁 중 역할은 사랑이 아니라 물류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요약: 전쟁은 스팸의 상온 보존성과 규격화된 형태를 군사 물류의 핵심 조건과 맞아떨어지게 했고, 1940~1945년 사이 1억 3,300만 캔이 해외로 공급되며 세계 식품사의 한 축을 차지했습니다.

    캔 하나가 문화를 만든 방식 — 세계화의 실제 경로

    전쟁이 끝나면 스팸의 시대도 끝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군인과 군수물자의 이동이 곧 식품의 이동이었고, 스팸은 전쟁터가 있었던 지역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이것이 세계화(globalization)의 한 형태입니다. 여기서 세계화란 단순히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식품이 현지 생활방식과 연결되며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와이입니다. 전쟁 중 신선한 생선 공급이 제한되면서 저장성이 높은 식품의 비중이 커졌고, 스팸이 현지 식생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자료는 당시 하와이에서 스팸이 신선 단백질을 대신하는 식품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스팸은 하와이 스팸 무스비(Spam musubi)라는 형태로 현지화됩니다. 스팸 무스비란 밥 위에 스팸을 올리고 김으로 감싼 음식으로, 일본의 오니기리 문화와 스팸이 결합한 결과물입니다.

    한국도 같은 경로를 밟았습니다. 전쟁 이후 미군 부대 인근에서 부대찌개가 생겨났고, 그 안에 스팸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스팸을 그냥 "원래 한국 음식에 쓰이던 재료"처럼 여겼는데, 이 경로를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익숙함이 반드시 원래부터 그랬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에서도 스팸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용됐고,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식문화와 섞어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같은 캔이 지역마다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형된 겁니다. 현지화(localization)란 외부 상품을 현지의 재료, 맛, 방식에 맞게 변형하는 과정인데, 스팸은 그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요약: 스팸의 세계화는 수출이 아니라 전쟁 물류의 이동 경로를 따라갔으며, 각 지역에서 현지 식문화와 결합하는 현지화 과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평범한 캔 하나가 남긴 진짜 질문 — 기술과 필요가 만나는 방식

    스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기술이 먼저 있었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필요가 그 기술을 대규모로 증폭시켰으며, 이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했습니다. 이 흐름은 스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이 과정이 오늘날의 글로벌 식품시장에도 그대로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들어온 식품이 처음에는 낯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현지 입맛에 맞는 형태로 바뀌고, 어느 순간 그것이 '원래 우리 음식'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팸 역사에서 한 가지 더 짚을 부분이 있습니다. 배급제(rationing)의 역할입니다. 배급제란 부족한 물자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공급하는 제도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도 시행됐습니다. 신선육을 비롯한 여러 식품의 공급이 제한되면서 스팸과 같은 가공육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팸이 전쟁에서 성공한 이유를 맛이나 영양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물류와 배급이라는 시스템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문화적 적응(cultural adaptation)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만합니다. 문화적 적응이란 외부에서 유입된 요소가 새로운 환경의 가치와 방식에 맞게 변형되어 정착하는 과정입니다. 스팸이 하와이에서, 한국에서, 필리핀에서 각각 다른 음식으로 살아남은 것은 이 과정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직접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이게 미네소타산 캔에서 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현지화가 완성되면 기원보다 경험이 앞서게 됩니다.

    • 가공육 기술: 저장성과 편의성을 높인 식품 공정이 스팸의 출발점
    • 물류 시스템: 전쟁의 대규모 보급 수요가 스팸을 세계로 이동시킨 경로
    • 배급제: 신선육 공급 제한이 통조림 가공육의 상대적 가치를 끌어올린 제도적 배경
    • 현지화: 각 지역의 식문화와 결합하며 스팸이 '그 나라 음식'으로 재탄생한 과정
    요약: 스팸의 역사는 기술이 필요와 만나고, 전쟁이 그것을 증폭시키며,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소화한 결과물로, 기술·물류·문화적 적응 세 가지가 하나의 캔 안에 압축된 사례입니다.

    찬장에서 스팸을 꺼낼 때마다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미네소타 공장에서 출발해 전쟁 물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수많은 사람들의 식탁에서 현지 재료와 섞인 뒤에야 한국 찬장까지 들어온 캔이기 때문입니다. 스팸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음식의 세계화란 수출 계약서 한 장이 아니라, 극단적 상황이 만든 물류와 사람들의 적응력이 함께 만들어내는 긴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저녁 김치볶음밥에 스팸을 넣는다면, 그 잠깐이 80년 넘는 역사의 끝자락임을 한 번쯤 떠올려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참고: Hormel Foods — Our History / U.S. National Park Service — Post World War II F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