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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원래 비를 막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전 유럽에서는 햇빛을 가리는 차양 도구였고, 그것도 아무나 들 수 없는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현관 앞에서 우산을 펼치다가 문득 이 물건이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해졌을까 궁금해졌고, 찾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가 아니라 햇빛을 피하던 물건이었다고?
우산 하면 당연히 비를 떠올리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우산과 양산의 출발점은 비가 아니라 햇빛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 구분 없이 '우산'이라고 부르는 물건에는 사실 두 가지 다른 물건이 섞여 있습니다. 양산(parasol)과 우산(umbrella)입니다. 양산은 태양 광선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고, 우산은 비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이 둘의 경계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차양 도구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이 물건은 단순한 햇빛 가리개를 넘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패션 액세서리(fashion accessory), 즉 복장을 완성하는 장식적 소품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패션 액세서리란 옷 자체가 아니라 모자, 장갑, 핸드백처럼 전체 외관을 다듬는 데 사용되는 보조 아이템을 의미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자료에 따르면 18세기부터 우산과 양산은 유럽 상류층 여성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햇빛을 피하는 도구가 왜 신분의 상징이 됐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피부색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야외활동의 격식, 의복의 계층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지금도 똑같은 기능의 물건이라도 소재와 디자인에 따라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그 시대에는 그 차이가 훨씬 선명했을 뿐입니다.
- 양산(parasol): 태양 차단이 주목적인 차양 도구. 유럽에서 상류층 여성의 패션 소품으로 발전
- 우산(umbrella): 비를 막는 데 초점. 영국에서 도시 생활이 확산되면서 실용성이 부각됨
- 역사적으로 두 물건의 경계는 모호했으며, 같은 물건이 햇빛과 비를 동시에 막는 용도로 쓰이기도 함
남자가 우산을 들면 조롱을 받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면 비를 막는 우산은 언제부터 남녀 구분 없이 쓰이게 됐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조나스 핸웨이(Jonas Hanway)입니다. 1750년경 런던 거리에서 우산을 정기적으로 들고 다닌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왕립박물관 그리니치 자료에서도 핸웨이를 영국에서 우산 사용을 대중화한 인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출처: Royal Museums Greenwich).
당시 우산은 여성적인 물건이라는 사회적 관습(social convention)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관습이란 특정 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행동 방식이나 규범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남자가 우산을 드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핸웨이는 그 분위기 속에서도 우산을 계속 들고 다녔고, 실제로 거리에서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아무도 안 쓰던 물건이 어느 순간 모두의 일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선 이어폰이 그랬고, 전동칫솔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저걸 굳이?' 싶었는데, 막상 써보면 생각이 달라지죠. 우산도 그 과정을 겪은 것입니다. 실용성(practicality), 즉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사회적 시선을 이긴 것입니다. 비가 잦은 런던이라는 도시 환경이 그 변화를 앞당긴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핸웨이가 우산을 영국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가끔 있는데, 이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앞선 영국의 우산 관련 기록도 존재합니다. 핸웨이는 발명가가 아니라 기존 물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가 작아 보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반드시 새로운 발명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우산 손잡이에 상아와 은을 쓰던 시절의 소비문화
19세기로 넘어오면 우산과 양산의 이야기는 한 단계 더 깊어집니다. 런던박물관에 소장된 1801~1830년대 우산을 보면 검은 비단 천에 은으로 장식된 손잡이, 고래수염으로 만든 살대가 사용됐습니다. 같은 시기 녹색 비단 우산 겸 양산에는 대나무 자루와 황동 부품, 상아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비를 막는 물건에 이 정도 소재(material)가 들어간다는 게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여기서 소재란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인 원재료를 뜻하는데, 당시에는 이 소재의 종류와 등급이 물건의 품격과 사용자의 사회적 이미지를 결정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1855~1865년 프랑스산 양산은 비단, 산호, 상아, 금속을 사용한 제품으로, 미술관 측은 이 양산이 착용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사치재(luxury goods)였다고 설명합니다. 사치재란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지만 높은 가격과 장식성 덕분에 부와 취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비싼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을 갖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호로 읽혔던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도 자동차 외관, 가방 소재, 시계 디자인처럼 기능과 직접 관계없는 부분에서 가격과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19세기 양산과 지금의 명품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1840년대 오픈 마차를 탈 때 양산을 사용하면서 마차용 양산이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것이 소비문화(consumer culture)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누가 쓰느냐가 물건의 이미지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이 시대 우산들을 찾아보면서 느낀 건, 기능성과 장식성이 서로 대립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비를 잘 막으면서도 손잡이가 아름다워야 했고, 접었을 때 실루엣도 중요했습니다. 지금 편의점에서 몇 천 원짜리 우산을 사서 어디 뒀는지도 잊어버리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우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필요한 물건'과 '보여주고 싶은 물건'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다는 것입니다. 햇빛 차양에서 출발해 패션 소품이 됐고, 도시의 빗속에서 실용성을 증명했고, 19세기에는 사치재로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과정이 단순한 발명의 역사가 아니라 문화적 변화(cultural change)의 과정이었습니다.
다음에 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칠 때, 손잡이를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지금은 플라스틱이고 가격도 몇 천 원이지만, 그 자리에 상아와 은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물건 안에 수백 년의 패션과 신분과 소비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우산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참고: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Parasol / Royal Museums Greenwich – Jonas Han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