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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우유가 상해서 우연히 탄생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설명을 들을 때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치즈 한 조각을 꺼내 빵에 올려 먹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우유는 하루 이틀이면 상하는데 치즈는 어떻게 몇 달, 어떤 건 몇 년씩 버티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 의문을 따라가다 보니 치즈의 역사는 사고(事故)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식품의 변화를 관찰하고 통제하면서 쌓아온 생활기술의 역사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유목민이 치즈를 발명했다는 말, 사실일까요
치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목민이 동물의 젖을 가죽 주머니에 담아 이동하다가 우연히 굳어진 덩어리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은 반면, 저는 공부하면 할수록 이게 기원 설화에 가깝다는 쪽에 더 손을 들게 됐습니다.
실제 고고학 자료는 꽤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2012년 출처: Natur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폴란드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구멍 뚫린 도기에 유제품 잔류물이 남아 있었고, 그 연대가 약 7,000~7,500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구멍 뚫린 도기라는 점이 핵심인데, 이는 응유(凝乳)에서 수분을 걸러내는 용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응유란 우유 속 단백질인 카세인이 산성 환경이나 응고 효소에 의해 뭉쳐 고체 덩어리가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단순히 우유가 우연히 굳은 게 아니라, 누군가 그 과정을 도구까지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증거는 정착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치즈 제조를 유목민만의 발명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가축 사육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정착민과 이동 목축 민 각자의 방식으로 우유 처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집단이 갑자기 발명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우유를 치즈로 바꿨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맛보다 훨씬 현실적인 문제에 있었다고 봅니다. 바로 보존입니다. 우유는 쉽게 상하는 반면 치즈는 수분을 줄이고 발효와 염장을 거치면 훨씬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발효란 미생물이 식품 속 성분을 분해하면서 산도와 향미를 바꾸는 과정을 말합니다. 젖산균이 우유의 유당을 젖산으로 바꾸면 산도가 올라가고, 그 환경에서 카세인이 굳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옛사람들은 미생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겠지만, 어떤 조건에서 우유가 원하는 형태로 변하는지를 수백 번의 반복 경험을 통해 익혔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김치나 된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유산균의 이름을 몰랐지만 소금의 양과 계절, 온도를 경험으로 조절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전통 발효식품의 논리는 치즈와 구조적으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과학 언어가 없어도 원리를 실천한 것입니다.
- 응유: 우유 단백질(카세인)이 뭉쳐 고체가 되는 현상. 치즈 제조의 출발점
- 발효: 젖산균이 유당을 분해해 산도를 높이는 과정. 보존성과 맛을 동시에 만든다
- 염장: 소금으로 수분 활동을 억제해 미생물 번식을 막는 방법. 건조와 함께 쓰면 더 효과적
- 탈수: 수분을 줄여 미생물이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과정. 장기 보관의 핵심
3,600년 전 미라 옆에서 치즈가 발견됐다는 사실
치즈를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놀란 대목이 있습니다. 2024년 출처: Cell Press에 발표된 연구인데,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샤오허 묘지에서 발굴된 약 3,500~3,600년 전 미라 목 주변에서 치즈 덩어리가 발견됐고, 연구진이 그 안에 남아 있는 고대 미생물 DNA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가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이 치즈는 케피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Lactobacillus kefiranofaciens라는 젖산균의 고대 유전체가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케피르란 젖산균과 효모가 공생하는 발효 스타터를 우유에 넣어 만드는 발효유를 말합니다. 즉 3,600년 전 사람들이 이미 특정 미생물 조합을 인위적으로 관리해 치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막연히 고대 치즈가 단순히 우유를 굳혀 소금에 절인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케피르 발효 방식이라면 미생물 스타터를 다음 배치에 넘겨 쓰는 기술까지 갖췄다는 뜻이거든요. 이 세균이 오늘날 티베트 계통의 미생물과 가까운 유전적 특성을 보인다는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치즈 제조 문화가 사람과 가축의 이동을 따라 넓은 지역에 걸쳐 전파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숙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숙성이란 일정한 온도와 습도 환경에서 치즈를 일정 기간 두면서 내부 미생물과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달라지면 같은 우유에서 출발해도 체다, 파르미지아노, 블루치즈처럼 전혀 다른 맛과 향, 질감이 만들어집니다. 하나의 치즈를 미생물 생태계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균, 효모, 곰팡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치즈 내부를 계속 변화시킵니다.
제가 직접 블루치즈를 처음 먹어봤을 때 그 강렬한 향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향이 곰팡이의 효소 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나니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상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은 수천 년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술의 산물이었던 셈입니다.
치즈 역사에서 중요한 건 이 기술이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목축 문화, 발효 스타터, 숙성 방법이 교역과 이동을 통해 지역과 지역 사이를 흘러 다녔습니다. 오늘날 수백 종의 치즈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기후, 목초, 미생물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같은 기술이 각자의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치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우유가 상해서 치즈가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우유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방향을 손으로 조절하면서 치즈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고민이 수천 년 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결과가 지금 우리 냉장고 안에 있습니다.
마트에서 치즈를 고를 때 저는 이제 조금 다르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딱딱한 파르미지아노 한 조각에도 응유, 탈수, 염장, 숙성이라는 여러 단계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발효식품에 관심이 생기신 분이라면 가까운 치즈 하나부터 성분표나 숙성 기간을 한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보존에서 시작해 맛과 문화로 진화한 이 긴 여정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참고: Nature — 신석기 치즈 제조 증거 연구 / Cell Press — 청동기시대 케피르 치즈 미생물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