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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파스타에 토마토가 없다고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토마토는 이탈리아 음식이 아닙니다. 16세기까지 유럽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독이 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꽤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지, 토마토 하나가 그걸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악마의 과일이라 불린 이유 — 가지과 식물이라는 낙인
토마토가 유럽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세기입니다. 스페인 식민 세력을 통해 신대륙에서 건너온 이 식물을, 당시 유럽인들은 곧바로 밥상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토마토는 가지과(Solanaceae)에 속하는 식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과란 가지, 감자, 고추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물이 속한 식물 분류군인데, 문제는 이 분류군 안에 벨라도나(Belladonna)처럼 독성이 강한 식물도 함께 포함돼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식물 분류학(Botany)이 지금처럼 체계화되지 않았습니다. 식물 분류학이란 식물의 형태와 특성을 기준으로 종류를 나누고 관계를 밝히는 학문인데, 16세기 유럽에서는 이 체계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였습니다. 비슷한 과(科)에 독초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계의 이유가 충분했던 시절이었으니, 토마토를 향한 의심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Kew)의 식물 자료에서도 토마토가 초기에는 관상용으로 재배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출처: Royal Botanic Gardens, Kew).
재미있는 것은, 1544년 이탈리아 의사이자 식물학자 피에트로 안드레아 마티올리가 토마토를 기록하면서 붙인 이름이 '황금 사과(pomi d'oro)'였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빨간 토마토와 달리, 당시 유럽에서 관찰된 토마토 가운데는 노란색 계열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도 이 대목에서 멈칫했는데, 토마토의 상징처럼 여기던 빨간색이 사실은 나중에 확립된 이미지라는 게 묘하게 낯설었습니다.
토마토가 '악마의 과일'이라고 유럽 전체에서 공식적으로 불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독이 있는 사과(poison apple)'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지역마다 다른 강도로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유럽에서는 경계심이 강했고, 남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찍 식용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 토마토는 독성 식물과 같은 가지과에 속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독성 의심을 받았습니다.
- 16세기 식물 분류학은 아직 초기 단계로, 과학적 근거보다 외형적 유사성으로 판단하던 시기였습니다.
- 처음 기록된 토마토는 지금의 빨간 대과종이 아니라 노란 계열의 작은 열매로 유럽에 알려졌습니다.
- 북유럽에서는 관상식물로, 남유럽에서는 비교적 빨리 식재료로 받아들여지며 지역 차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탈리아 식문화와의 만남 — 농민의 밥상에서 시작된 변화
솔직히 이건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토마토 파스타가 아주 오래된 이탈리아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빨간 피자가 자리를 잡은 것은 대체로 18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토마토가 유럽에 들어온 16세기로부터 따지면 200년 이상의 공백이 있는 셈입니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이 바로 남부 이탈리아 농민들의 식생활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국가가 아니었고, 지역마다 식문화가 달랐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토마토는 비교적 재배가 수월하고, 단순한 조리로도 맛과 색을 더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서민층에 먼저 스며들었습니다. 식문화의 확산, 즉 특정 재료가 일부 지역과 계층의 음식에서 여러 계층의 일상으로 퍼지는 과정을 '식문화 전파(Culinary Diffusion)'라고 하는데, 이 과정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리법이 반복되고 시장에서 거래되며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정착됩니다.
음식사학자 데이비드 젠틸코어는 이 과정을 약 3세기에 걸쳐 추적합니다. 16세기의 식물 탐구에서 시작해, 17~18세기 식생활 변화, 19세기 가공식품 산업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분석한 것인데, 핵심은 토마토가 단지 '맛있어서' 퍼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출처: Columbia University Press — Pomodoro! A History of the Tomato in Italy). 가난한 사람들의 식탁에서 먼저 활용됐고, 그것이 지역을 넘고 계층을 넘어 퍼졌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음식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떤 재료가 한 나라를 대표하게 되는 것은 그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낯선 재료가 새로운 환경에서 조리되고, 반복해서 먹히고, 세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 것'이 됩니다. 토마토는 그 과정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음식의 전통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최근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식품 산업화가 만든 전환점 — 상업 작물이 된 토마토
19세기로 접어들면서 토마토의 운명은 또 한 번 달라집니다. 식품 가공산업(Food Processing Industry), 즉 식재료를 장기 보관하고 대량으로 상품화하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토마토의 치명적인 약점이 오히려 기회로 뒤집혔습니다. 신선한 토마토는 쉽게 물러지지만, 소스나 캔으로 가공하면 보관과 유통이 훨씬 쉬워집니다. 약점이 장점으로 전환된 셈입니다.
이 변화가 토마토를 단순한 농산물에서 상업 작물(Commercial Crop)로 끌어올렸습니다. 상업 작물이란 자가소비보다는 시장 판매를 목적으로 대규모로 재배되는 농작물을 뜻합니다. Kew의 자료에서도 현대적인 상업 토마토 재배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됐다고 설명하는데, 제가 직접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식품 보관 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식습관 자체를 바꿨다는 사실이 와닿았습니다.
저도 집에서 토마토소스를 냄비 가득 끓여 유리병에 나눠 담아 두는 걸 즐기는데, 그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몇백 년 전 사람들에게는 이 보관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마트에서 캔 토마토 하나를 사면 몇 달을 두고 쓸 수 있지만, 그전 시대에는 제철이 지나면 토마토를 쓸 수 없었습니다. 기술이 식문화를 바꾼 것이 아니라, 기술이 식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이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토마토소스가 파스타와 결합하고, 피자의 빨간 베이스가 굳어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탈리아 음식'이라 부르는 이미지가 형성됐습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토마토라는 작물 하나가 신대륙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고, 서민의 밥상을 거쳐 산업과 만나 세계 음식의 아이콘이 된 과정입니다.
토마토 하나를 반으로 잘랐을 때 느꼈던 낯선 감각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음식일수록 뒤에 긴 이동과 실패와 선택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토마토는 독이 의심받았고, 오랫동안 관상식물로 대접받았으며, 가난한 농민의 밥상에서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이 수백 년입니다.
음식의 전통이라는 게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먹는 것들도 수백 년 후에는 누군가의 '전통 음식'이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저녁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만든다면, 그 빨간색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한 번쯤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의 뿌리를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됩니다.
참고: Royal Botanic Gardens, Kew — Tomato (Solanum lycopersicum) / Columbia University Press — Pomodoro! A History of the Tomato in Italy, David Gentilcore / University of Vermont Extension — A History of Tomat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