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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하이힐이 처음부터 여성의 신발이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신발장 정리를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흔들렸고, 조금 찾아봤더니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하이힐의 뿌리는 서아시아의 기마 전사들이 말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신었던 굽 있는 신발이었고, 그것이 유럽 귀족 사회로 건너오면서 권력과 신분의 상징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말 위에서 태어난 굽, 유럽 귀족의 발로 걸어오다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하이힐의 출발점이 패션과 전혀 무관한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서아시아의 기마문화(equestrian culture), 즉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 문화에서 굽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기마문화란 말을 전투와 이동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생활 방식을 의미합니다. 말을 타는 사람에게 굽은 꽤 실용적인 장치였는데, 발을 등자(stirrup)에 안정적으로 걸어두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등자란 말을 탈 때 발을 올려놓아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발걸이로, 이것이 없으면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굽이 발의 미끄러짐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바타 신발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이 서아시아의 굽 있는 신발이 유럽에 전해진 시점은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 무렵입니다(출처: Bata Shoe Museum). 전달 경로로는 사파비 왕조의 샤 압바스 1세(Shah Abbas I, 1588~1629년 재위)가 오스만 제국에 맞서기 위해 유럽 여러 국가와 외교 관계를 넓히는 과정이 주목됩니다. 그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승마화(riding footwear), 즉 말을 탈 때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발이 유럽 귀족의 눈에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직접 이 흐름을 따라가 보니,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면서 전혀 다른 의미를 얻게 되는 방식이 무척 자연스러웠습니다. 실용적인 승마 장비가 유럽 귀족에게는 페르시아적인 남성적 이미지와 권위를 담은 패션(fashion)으로 읽힌 것입니다. 여기서 패션이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전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도 밀리터리 재킷이나 작업복 디자인이 거리 패션으로 들어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입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신발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자료를 보면, 당시 신발의 형태와 소재, 장식은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social hierarchy)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합니다(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사회적 위계란 신분과 권력에 따라 사람들이 구분되는 질서를 뜻하는데, 당시 귀족들은 이 질서를 옷과 신발로 시각화했습니다.
그 결과 굽은 점점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도구가 됩니다. 과시적 소비란 필요 이상의 비용을 들여 자신의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소비 방식입니다. 걷기 불편할수록 오히려 '나는 육체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신호가 됐고, 거기에 비싼 직물과 버클, 화려한 색상이 더해지면서 신발 하나가 작은 신분증처럼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 서아시아 기마 전사의 실용 장비 → 유럽 귀족의 패션 아이템으로 전환
- 페르시아 외교 접촉(샤 압바스 1세 시대)이 유럽의 굽 있는 신발 유행에 영향
- 굽의 높이와 재료가 사회적 신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동
- 불편함 자체가 노동과 거리를 두는 '과시적 소비'의 증거로 읽힘
루이 14세의 빨간 굽, 권력이 신발에 새겨지는 방식
제가 루이 14세(Louis XIV, 1643~1715년 재위) 초상화를 처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건 얼굴도 왕관도 아니라 높은 굽과 길어 보이는 다리였습니다. 왕이 실제로 얼마나 큰 사람인지보다, 그림 안에서 얼마나 압도적으로 보이도록 연출됐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각적 권력(visual power)의 작동 방식입니다. 시각적 권력이란 외모와 복식을 통해 권위와 지위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단순히 예뻐 보이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17세기 궁정문화(court culture)에서는 누가 어디에 서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굽에 어떤 색이 칠해져 있는지까지 모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궁정문화란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활양식과 예절 체계를 말하며, 그 안에서 복식은 말보다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자료에 따르면,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 궁정에서 빨간 가죽 굽은 귀족적 취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 스타일이 유럽 주요 궁정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이 빨간 굽을 착용 했습니다. 오늘날 특정 명품 브랜드의 빨간 밑창이 신분과 취향을 상징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색의 권력화'는 시대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패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 하이힐의 시대는 18세기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복식에서 실용성과 절제가 중요해지면서 화려한 굽은 남성의 일상복에서 밀려났고, 굽은 승마화나 군용 부츠처럼 기능적인 맥락에만 남게 됩니다. 반면 여성 패션에서는 굽이 다른 형태로 계속 발전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힐은 여성의 신발'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제가 이 흐름을 따라오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남성적인 옷', '여성적인 신발'이라고 당연하게 느끼는 구분들이 사실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적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한때 높은 굽은 남성 귀족의 권력과 군사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패션의 기준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다시 보게 됩니다.
정리하면, 하이힐은 신발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가'의 역사입니다. 기능에서 시작해 패션이 되고, 패션이 권력이 되고, 권력의 상징이 다시 다른 성별의 일상으로 옮겨가는 과정. 제가 신발장을 다시 보게 된 건 그 때문입니다. 편하다고 신는 운동화도, 격식을 갖추려 꺼내는 구두도, 결국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느끼는 패션의 기준이 언제 또 바뀔지, 그것도 꽤 궁금해집니다.
참고: Bata Shoe Museum — Standing TALL: The Curious History of Men in Heels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Shoes in The Costume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