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설탕 봉지를 집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단맛이, 사실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식량 부족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라면 어떨까요. 사카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저도 처음엔 그냥 '오래된 감미료 이야기겠지' 싶었는데, 읽을수록 시대가 물질의 가치를 어떻게 바꿔놓는지가 보여서 꽤 오래 붙잡혀 있었습니다.손에서 느낀 단맛 — 사카린 발견의 뒷이야기사카린이 발견된 건 1879년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화학자 이라 렘슨(Ira Remsen)과 콘스탄틴 팔베르크(Constantin Fahlberg)가 연구를 진행하던 중, 팔베르크가 실험실 작업을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손에서 이상하게 강한 단맛을 느낀 것이 계기였습니다. 실험 과정에서 묻어온 물질이 혀에 닿은 것이었고, ..
솔직히 저는 옥수수를 그냥 노란 알갱이로만 봤습니다. 마트에서 통조림 하나 집어 들다가 문득 "이게 대체 어디서 온 거지?" 싶었고, 그게 이 글의 시작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옥수수는 약 9,000년의 역사를 가진 식물이고, 한때 마야 문명에서 신성한 존재였다가 오늘날에는 미국 사료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는 상품작물이 됐습니다. 같은 식물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았을까요.9,000년 전 풀 한 포기가 옥수수가 된 방법, 알고 계셨나요?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가장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옥수수가 테오신테(teosinte)라는 야생 풀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입니다. 테오신테는 알갱이가 손가락 하나 길이도 안 되는 작은 풀인데, 지금의 옥수수와 나란히 두면 같은 식..
2025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소비된 인스턴트 라면은 약 1,242억 식입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잠깐 멍했습니다. 냄비에 물 올리고 봉지 뜯는 그 평범한 행동이 전 세계에서 1,242억 번 반복됐다는 건데, 그 출발점이 전후 일본의 허기와 한 남자의 작은 작업실이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라면이 태어난 시대, 배고픔이 만든 질문1945년 패전 직후 일본은 식량공급망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식량공급망이란, 식품이 생산되어 가공되고 유통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일련의 구조를 말합니다. 전쟁이 끝난다고 이 구조가 하루아침에 복원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충분한 끼니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오사카역 주변 암시장에는 라면 노점 앞에 긴 줄이 생겼습니다.미국의 원조..
1937년 7월 5일, 미국 호멜 푸드(Hormel Foods)가 처음 출시한 SPAM 한 캔이 전쟁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한국 찬장까지 들어오는 데 채 100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치볶음밥에 스팸을 넣으면서 한 번도 그 캔의 내력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사를 찾아보고 나서는 냉장고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됐습니다. 작은 캔 하나에 전쟁, 물류, 식품기술, 그리고 현지화(localization)의 역사가 압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남는 부위가 상품이 된 이유 — 스팸 탄생의 경제적 배경SPAM은 처음부터 전쟁을 위해 설계된 식품이 아니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 식품산업은 대량생산 체계가 빠르게 갖춰지던 시기였고, 호멜 푸드는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돼지고기 부위를 어떻게 상품으로 바꿀 것인가..
통조림은 전쟁에서 태어났습니다. 1795년 프랑스 정부가 군대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액의 상금을 내건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도 마트 캔 코너를 지나치면서 한 번도 이걸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 역사를 찾아보고 나서 찬장 속 참치캔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나폴레옹 시대, 군대가 만들어낸 식량 위기솔직히 처음엔 "나폴레옹이 통조림을 만들게 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보니 이야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통조림의 시작은 나폴레옹 개인의 지시가 아니라, 18세기말 유럽 전역을 무대로 대규모 군대가 장기 이동을 반복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됐습니다.당시 군대가 의존했던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염장(salting), 즉 소금으로 식품의 수분을 ..
피자와 파스타에 토마토가 없다고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토마토는 이탈리아 음식이 아닙니다. 16세기까지 유럽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독이 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꽤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지, 토마토 하나가 그걸 고스란히 보여줍니다.악마의 과일이라 불린 이유 — 가지과 식물이라는 낙인토마토가 유럽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세기입니다. 스페인 식민 세력을 통해 신대륙에서 건너온 이 식물을, 당시 유럽인들은 곧바로 밥상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토마토는 가지과(Solanaceae)에 속하는 식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과란 가지, 감자, 고추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