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르네상스를 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메디치 가문. 그 정도면 충분한 줄 알았죠. 그런데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아볼수록, 제가 알고 있던 건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피렌체 두오모 앞에 실제로 서는 순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복잡한 역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천재 때문이 아니었다, 도시국가 경쟁이 만든 예술일반적으로 르네상스 하면 천재 예술가의 등장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특별히 뛰어났기 때문에 그 시대가 빛났다고 막연히 믿었죠. 그런데 제 경험상 그 설명만으로는 피렌체 골목골목에 남아 있는 것들을 다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저도 처음엔 전국시대 일본을 그냥 칼싸움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오사카성 앞에 서서 그 거대한 석벽을 올려다본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걸 전투력 하나로 설명하기엔 뭔가 많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이 각자 무엇을 바꿨는지 직접 성곽과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서 살펴보니, 전국시대는 전쟁만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중앙 권력, 지방 세력의 성장, 상업과 토지 제도의 변화, 새로운 무기의 등장, 그리고 이를 통제하려는 정치적 선택이 모두 얽혀 있었습니다.오닌의 난이 만든 균열, 전국시대는 왜 시작됐을까솔직히 이 부분은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국시대의 시작을 오닌의 난(1467~1477) 한 사건으로..
사무라이는 처음부터 일본의 지배 계층이 아니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지면서 지방 토지를 지키기 위해 등장한 무장 집단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사무라이 역사를 공부하기 전까지 칼과 갑옷 이미지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막상 자료를 파고들어 보니 이게 꽤 복잡한 사회 변화의 결과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칼보다 먼저 등장한 건 토지 분쟁이었습니다제가 처음 사무라이 역사 자료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의외였던 건 이들의 등장이 전쟁 문화보다 토지 문제와 훨씬 더 깊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거든요.8세기말부터 12세기에 걸친 헤이안(平安) 시대, 교토의 조정은 나라 전체를 통치했지만 지방에 대한 ..
솔직히 저도 처음엔 '명나라 다음에 청나라가 들어섰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644년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었습니다. 명나라 내부의 반란과 재정 붕괴, 그리고 청나라의 기민한 군사적 개입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입니다. 두 왕조는 지배 집단도 달랐고, 군사 조직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서로 놀랍도록 닮은 부분도 있었습니다.명나라는 왜 무너졌을까요, 청나라가 침입해서만은 아닙니다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제대로 알았을 때 진짜 의외였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청나라가 명나라를 무너뜨렸다'는 설명은, 사실 과정의 절반도 담지 못합니다. 1644년 청군이 산하이관을 넘어오기 훨씬 전에 이미 명나라는 내부에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왜 이 나라는 전쟁에서 밀렸는데 오히려 부자였을까?"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송나라가 딱 그랬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번번이 밀리면서도 당시 세계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 처음 그 사실을 접했을 때 저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시화와 화폐경제, 해상무역이 어떻게 맞물렸는지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림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도시화와 화폐경제 — 송나라 경제는 어떻게 돌아갔나솔직히 처음에는 "평화로운 시대라서 장사가 잘됐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개봉과 항저우의 도시 기록을 조금만 파고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항저우는 남송 시기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는데, 당시 유럽 최대 도시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규모였습니..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당나라가 강했던 이유를 군사력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안을 직접 걸어보고, 지도 위에서 장안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해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오늘날의 시안인 장안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물자, 종교와 문화가 모이는 거대한 도시였고, 그 안에서 당나라의 전성기를 만든 여러 조건이 서로 맞물리고 있었습니다.당나라의 번영은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행정 제도를 정비하고 경제 기반을 마련한 것,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던 것, 실크로드를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된 것,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과정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이번에는 당나라 전성기의 배경을 장안과 실크로드, 국가 운영 체계, ..